노적봉도 식후경 / 덕수
내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노잼시기’란게 있다. 노잼시기란 잔잔한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심심하다’고 느끼는 시기를 말한다. 올해만 3번째다. 이리저리 새로운 걸 찾아 바삐 움직이는데도 대부분의 상황을 지루하게 받아들이는 이 상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현재 속해 있는 장소와 환경에서 벗어나 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마침 회사에서 내어준 2주간의 휴가 기간과 맞물렸고, 가족들과 3박 4일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군산(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변산반도) > 담양 > 지리산 > 남해(다랭이 마을, 독일 마을, 미국 마을) > 목포 순의 3박 4일 코스였다. 5인 탑승이 가능한 중형차는 부모님, 나, 여동생, 그리고 온갖 짐으로 가득 찼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캠핑을 염두에 둔 여행이었기에 짐이 참 많았다. 텐트, 침낭, 버너, 온갖 식자재로 채운 아이스박스, 식기와 수저 세트, 돗자리, 통기타, 무선 마이크, 블루투스 스피커, 슬리퍼 등이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공중에 떴다 내려앉았다. 드라이브하는 동안 차 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언어와 소리가 오갔다. 주체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몸짓으로,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러다 배고프면 근처 골목을 왔다 갔다 하며 다수가 끌리는 곳에서 식사했다. 이를 쑤시며 식당 문을 나서는 아저씨의 표정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보여서, 카카오 지도 별점이 4.3점이라, 간판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왼쪽부터 담양에서 먹은 죽순 메밀국수, 독일마을에서 먹은 독일 우유 아이스크림, 남해에서 먹은 남해 유자 빵)
집에서 <서울분식>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글자 하나하나 손수 그린 <옛날손만두> 입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오전 11시에 오픈하고, 오후 12~1시면 문을 닫는 만둣집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넘치는 이 만둣집은 몇 년째 같은 양의 만두만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듣기로는 누군가 대량 생산을 제안했는데, 운영하는 부부가 본인들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 없이 꾸려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했다고 한다. 3~4번 정도 방문했는데, 갔을 때마다 완판 상태라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잠시 잊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날, 목포에 내려온 지 1년이 지나서야, 점심을 먹기 위해 베트남 음식점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처음으로 활짝 열린 문을 보게 됐다. 열린 문 너머로 아주머니가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만두 몇 개가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한나 씨에게 반강제로 3,000원을 빌렸고, 주머니에 있던 500원을 더한 3,500원으로 만두 한 접시를 샀다. 흥분한 상태로 주인아주머니께 내가 이 만두를 얼마나 원했는지와 그간의 실패경험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자 희미한 미소로 사진 좀 찍어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3,500원과 교환한 소중한 만두 10알.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누군가 ‘이 집 만두는 5~6인분을 기본으로 삽니다.’라 남긴 후기가 생각났다. ‘현금만 넉넉하게 있었다면, 남아있던 만두를 몽땅 가져올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이 드는 맛이었다.
5월에 결혼하는 친구가 2명 있다. 나와 생일파티를 함께 했던 담담과 <공장공장>의 공장장 동우 씨가 바로 그 주인공! 담담의 결혼식이 끝난 지 1주일 되던 날, 동우 씨는 청첩장을 돌릴 예정이라며 <괜마> 주민들을 <세종집>으로 한데 불러 모았다.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고, 다큐3일 촬영날짜와 겹쳐 곳곳에 카메라를 든 감독님들도 왔다 갔다 하셨다. 한참 고기를 신나게 먹고 있는데, 식당 모퉁이에서 명호, 동우 씨가 케잌을 들고나오는 게 보였다. ‘동우 씨 결혼 축하 케잌인가?’라 생각하고 있을 때, 명호 씨가 “오늘 최소 한끼가 1년 된 날이에요!”란 말을 꺼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최소 한끼> 대표님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꼭 누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표정과 말로 울고 있는 민지를 놀리기 시작했다. 괜마 막둥이자, 한 식당의 대표님인 민지의 그간 노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왼쪽부터 케잌을 들고 서있는 공장장들과 최소 한끼 친구들, 눈물을 참지 못하는 최소 한끼 대표 타노스, 식사 후 갔던 산책길에서)
<공장공장>에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했다. 그중 한 명인 윤욕망 씨와 함께 <최소 한끼>에 들른 날이었다. 앞머리를 잘라 더욱 개구져진 부(산)또(라이)황(일화)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을 때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욕망 씨는 수줍게 ‘저도...’라며 자신이 먹고 있던 음식 접시를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해 보였다. 2주 동안 곁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조곤조곤하게 풀어나가는 편인 듯하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자극적인 음식이 좋다고 말하고, 태형이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왼쪽부터 두부크림카레의 연근을 집어 먹는 부또황, 특이한 방식으로 물을 따르는 윤욕망, 템페간장파스타를 들고 미소를 지어 보이는 윤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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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분식: [백종원의 3대 천왕] 돈까스 편에 나왔던 곳. 돈까스와 쫄라, 김치볶음밥이 맛있다. (목포시 삼일로 51-2)
2
옛날손만두: 오전 11시에 오픈하고, 오후 12시~1시면 문을 닫는다. 3,500원에 득템할 수 있는 야들한 찐만두 10개는 꽤나 감동적. (목포시 삼일로 31)
3
괜마: 괜찮아마을의 줄임말. 실패해도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4
공장공장: 덕수가 매일 출근해야만 하는 일터. 공장공장은 목포에 자리 잡은 에이전시로 공간, 기획, 출판, 영상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5
세종집: 점심때는 6,000원으로 한식 뷔페를, 저녁때는 목살과 대패삼겹살을 즐길 수 있는 동네 밥집. (목포시 삼일로9번길 8-1)
6
최소 한끼: 원도심 내 최초의 채식 식당. 매달 제철 채소로 이뤄진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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