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도 식후경 / 덕수
지난 수요일은 <엮기와 풀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뜨개질을 배우면서 글 쓰는 시간을 가진지 어느덧 3개월 차가 된 것이다. ‘말’ 중심이 아닌 ‘글과 뜨개질’을 통해 여러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던 지난 3개월. 함께한 친구들과 서로의 글을 나눠 읽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가까워졌고, 완벽하진 않지만 코바늘로 무언갈 만들 수 있게 됐다. 여태 가져본 적 없는 형태의 모임이었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엮기와 풀기>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왔을 때 똑 부러지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그 끝에 이 말을 꼭 붙이게 된다. 모임을 끝낸 지금의 나는 ‘힘 풀고 있는 상태를 불안해하지 않게 된 거 같다’고. 긴장해서 힘주고 실을 엮을수록 작아지는 구멍 때문에 다음 코 뜨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몇 번 마주하게 되면서, 의도적으로 힘 빼는 시간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집ㅅ씨>는 집 앞에 생긴 수프&스튜 맛집이다. 주인장 세영이 말하길, 식당의 로고를 고민할 때 땅에 뿌리가 뻗는 형태를 반복해 그리다 문득 ‘집’과 ‘씨앗’이 세영의 식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단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하여 ‘집’ 그리고 ‘씨’ 를 연결해주는 ‘ㅅ’을 가운데에 두어 <집ㅅ씨>란 독특한 이름의 식당을 탄생시킨 것이다. 세영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여행객, ‘집시’를 떠올려도 좋겠단 말을 덧붙였다. <집ㅅ씨>에 방문하면 이상하게 몸에 힘이 ‘탁’하고 풀려버린다. 고된 일을 마치고 내 방 매트리스에 쓰러지는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달까. 가게 내를 가득 채운 오묘한 향과 높지 않은 조도, 나른하게 흐르는 인도풍 음악이 하루 내 힘껏 주었던 긴장을 속절없이 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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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ㅅ씨
: 전남 목포시 수문로35번길 6, 1층. 동네에는 점심 장사 하는 가게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비교적 부족한 아침, 저녁 장사만 준비한다고. 때에 따라 천연효모빵, 샐러드, 카오소이, 반미를 판매하기도 한다. 예약을 통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니, 인스타그램 공지 확인을 추천! @home_soil_soul_society
<바 어항>은 리오 씨가 목포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곳이라 소개해준 칵테일바다. 소개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사라진 탓에 아쉬운 참이었는데, 어찌어찌 인연이 되어 <바 어항>의 주인, 달수 씨와 <최소 한끼>주방장 샐리의 합심으로 7월 한 달간 월, 수, 금, 밤 8시에 <최소 한끼>에서 <바 어항>을 열기로 했다. ‘맛없는 한 끼를 먹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달수 씨의 안주와 음료는 항상 기대 이상인데, 얼마 남지 않은 오픈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들러 즐기고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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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어항
: 7월 한 달, <최소 한끼>에서 월,수,금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오픈한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칵테일을 즐겨보고 싶다면 한 번 쯤 들려봐야만 하는 곳. 어릴 적부터 남다른 음악 취향을 가졌다는 사장님의 음악 선곡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곳의 큰 묘미. @uh.har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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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한끼
: 전남 목포시 영산로 20에 위치한 채식 식당. 원도심 내 최초의 채식 식당으로 매달 제철 채소로 이뤄진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이번 달 메뉴가 궁금하다면 -> @choi.so.han.ggi
단지 어렸을 때 먹어본 적 없단 이유로 잘 안 먹게 되는 음식이 몇 있다. ‘선지’는 내게 그런 애였다. <김정림선지해장국>이 여러 사람 입에 오르는 동네 맛집 중 하나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태 방문하지 않고 이리저리 피한 까닭은 이 때문이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건 같이 점심 먹는 친구들을 따르다, 어쩌다였다. 간판이 <김정림‘선지’해장국>이었는데 불구하고, 선지에 대한 거부감이 가시질 않는 나는 기어코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결론은 후회, 후회, 후회... 콩나물국밥이 맛없어서? 아니, 한 입 얻어먹은 친구들의 선지해장국이 너무 맛있어서 지난 나의 선택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매콤한데 고소하면서 뒷맛이 깔끔한 국물, 여태 먹어본 적 없는 독특한 식감의 선지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친구들 꺼 5~6입 뺏어 먹고 싶은 마음 억누르느냐 힘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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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림선지해장국
: 전남 목포시 번화로 41-3에 위치해 있는 해장국집. 콩나물국밥은 7,000원, 선지해장국은 10,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산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육회 맛이 ‘경기도식’ 육회였단 걸 알지 못했다. 지역별로 육회 양념이 다를 수 있겠다는 고민 자체를 해본 적 없고, 내가 아는 육회 맛을 ‘일반적인’ 육회로 알고 산 것이다. 2주 전인가? 목포에서 처음 육회를 사 먹은 날이었다. 내가 아는 ‘그 맛’을 상상하며 서빙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지나치게 빨간 고기 한 접시가 내려앉았다. 입안에선 고추장 맛이 진동했고, 소금, 설탕, 참기름으로 맛을 낸 육회만을 맛봐온 나에겐 충격이었다. ‘도대체 왜, 육회에 고추장을 넣었을까?’란 의문을 품은 채 근처에 육회 판매하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목포에 내려오기 전 경험했던 육회 맛을 꼭 찾고 싶었다. 검색을 통해 방문한 식당은 ‘신선한 암소를 사용하는 소고기 맛집’이라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흔한 달걀 노른자 하나 없이, 쪽파와 배, 갖은 양념으로 범벅된 육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 질은 최상이었지만 술술 넘기기엔 너무나 자극적인 맛이었고, 결국 내생에 처음으로 육회를 남기는 불상사를 저질렀다. 실망감을 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왜 우리동네에는 고추장 양념한 육회만 있는가?’를 고민하다 문득, 내가 지금 전라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전라도에서는 고추장과 쪽파에 버무린 매콤한 육회가 기본이었던 거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목포’란 걸 까먹고 있을 때가 대부분인데, 육회 덕에 다시금 자각하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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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차례로 서울의 <부촌육회>, 목포의 <국민포차>와 <등대식육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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