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도 식후경 / 덕수
(딸기샌드엔 우유식빵이죠!!!)
점심때 짜파게티를 한 바가지 끓여 먹고 각자 일에 집중하던 때였다. 창문 너머로 딸기와 오렌지를 가득 담은 트럭 한 대가 지나갔고, 창가 쪽에 앉아있던 명호 씨는 은혜 씨에게 현금 만원을 강탈(?)해 오렌지 6개, 딸기 1박스를 사 왔다. 명호 씨는 날이 좋으니 바다에 가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고, 우리는 나들이에 들고 갈 딸기샌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명호 씨는 생크림과 식빵을 사러 <코롬방>으로 향했고, 얼마 뒤에 돌아온 그의 품에는 생크림 3통과 옥수수식빵 한 봉지가 있었다. 아니, 옥수수식빵이라니...! 한나 씨와 은혜 씨 그리고 나는 딸기샌드는 당연히 우유식빵 아니냐며 명호 씨를 꾸짖었고, 명호 씨는 미리 말해주지 않은 우리 탓을 했다. 한나 씨가 <코롬방>에 들려 옥수수식빵을 우유식빵으로 바꿔오면서 우리의 실랑이는 끝이 났고, 날 좋은 날 목포대교 아래에서 바다보며 먹은 딸기샌드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오늘 날씨가 최소 한끼네)
출근길이 상쾌하던,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강한 햇볕 덕에 아스팔트 바닥이 반짝거리고, 개나리와 벚꽃 잎이 가볍게 흔들리던 날. 나는 이 상쾌함을 끊고 싶지 않아 친구들과 <최소 한끼>에 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함께 밥을 먹기로 한 명호, 동우 씨가 먼저 도착해 웨이팅 중이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숙현 씨가 부르는 소리에 우리는 재빨리 자리 잡고, 각자 원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식사하는 내내 숙현 씨는 더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고, 후식으로 살라미와 올리브, 아이스크림 롤케잌 등을 챙겨줬다. 먹는 내내 아무 말이 오갔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드게임의 밤)
괜마 사람들은 보드게임을 즐겨한다. 누군가에 의해 <보드게임의 밤>이란 모임에 초대된 나는 <최소 한끼>에서 참여자들과 접선했다.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 체력 비축을 위해 달수 씨가 짜치계를 만들어줬고, 나는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릇이 비워지는 순간까지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
(인애피자)
인애 씨는 내 하우스메이트자 괜마의 제과제빵 달인이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장대한 것에 비해 위가 병아리콩 만한 인애 씨는 본인이 요리한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걸 좋아한다. 최근에는 피자에 빠져 피자에 들어가는 도우, 토마토소스 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인애 씨가 만든 피자 중 맛없던 게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루꼴라가 가득 올려진 루꼴라프로슈토를 제일 좋아한다. 프라이팬에 구워서 그런지 누룽지 향이 나는 쫄깃한 도우, 48시간 숙성해 만든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와 고소한 치즈, 루꼴라의 조화가 맥주를 절로 부르는 맛이다.
(우리가 부끄럽니?)
4월은 은혜 씨 생일이 있는 달이다. 은혜 씨는 나만큼이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은혜 씨의 낯가림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우리는 인애 씨의 아이디어로 개성 넘치던 X세대를 재현하기로 입을 모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이익준과 김준완의 어릴 적 모습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괜마의 뜨개장인 지나 씨는 머리에 꽂을 수 있는 붙임 머리와 파티에 필요한 각종 소품들을 준비했고, 제과제빵 달인 인애 씨는 초코크레이프케잌을 만들었고, 민지 씨와 나는 장보기와 간단한 요리를 맡았다. 영범 씨는 이런 우리들의 정신 없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담아냈는데, 영상에서 생일 당사자인 은혜 씨는 뒷전이고, 파티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더 신나 보여 미안하면서도 웃겼다.
(육식을 절제하는 친구들)
나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함께하는 한 끼 식사로 풀어내는 편이다. 이번 달 내가 가장 신경 쓴 한 끼는 달수, 숙현, 리오 씨와 함께한 월남쌈 자리였다. 내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냐 고생한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고마움을 드러내고 싶었다. 모두 채식에 관심있고, 맛있는 걸 잘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라 메뉴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고기가 적으면서도 대접받은 느낌이 확실하게 나는 요리를 고민했는데, 전날 은혜 생일파티 때문에 같이 장을 보던 민지 씨가 월남쌈을 추천했다. 준비한 채소들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적당한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렸을 때,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는 친구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리오네)
리오 씨는 요리가 끝날 때까지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분명 그의 초대를 받고 들린 것인데, 그는 거실에서 TV나 보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부엌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집주인의 말에 따라 TV를 시청하긴 하는데, 부엌문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고기기름 냄새에 정신없던 참이었다. 리오 씨는 아무 말 없이 부엌문을 열고 우리에게 묘한 눈짓을 하더니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은혜 씨와 나는 그 눈빛에 홀린 듯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식탁 위에는 김치비빔국수, 목살마늘구이, 매운닭발 등이 차려져 있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 고기가 당긴다던 은혜 씨를 저격한 메뉴였다. 은혜 씨는 하이텐션으로 젓가락질을 시작했고, 리오 씨는 그런 은혜 씨를 굉장히 인자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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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동우 씨와 함께 공장공장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은혜: <박장꾸의 건강 일기> 에디터.
코롬방: 원도심 내 가장 오래된 빵집. 크림치즈바게트가 맛있는 곳.
한나: 공장공장의 마케터.
최소 한끼: 원도심 내 최초의 채식 식당. 매달 제철 채소로 이뤄진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동우: 명호 씨와 함께 공장공장의 대표를 맡고 있다.
숙현: 원도심 채식 식당 <최소 한끼>의 주방장이자 덕수의 전 룸메이트.
괜마: 괜찮아마을의 줄임말. 실패해도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달수: 목포의 날씨요정. 그 말에 의하면 그가 있는 곳은 항상 날씨가 좋다.
인애: 괜찮아마을 예술인이자 덕수의 하우스메이트 중 1명.
리오: <오의 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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